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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1월 28일은 어떤 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애플 사의 아이폰이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출시되었기 때문이죠. 물론 비공식적으로 전파인증을 받아 쓰고 있던 사용자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죠. 아이폰은 KT를 통해 정식 출시되었고 곧바로 대한민국 휴대폰 사용자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됩니다.

아이폰? 아이폰, 아이폰!

 아이폰이 대한민국의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에 끼친 영향은 한마디로 대단합니다.

국내에 처음으로 출시된 아이폰, 아이폰 3Gs

 세련된 디자인과 함께 정전식 터치스크린과 함께 쉽고 편리한 UX, 그리고 아이튠즈 스토어를 통한 애플리케이션과 각종 콘텐츠의 도입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죠.  그저 스마트폰의 한 기능으로만 존재하던 음악 재생 부분도 일정 수준 이상을 달성하여 오디오 기기를 대신할 수 있게 했고 이는 고급 이어폰/헤드폰 시장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아이폰/아이패드 전용 오디오 독들의 출현으로 이어졌습니다.

 애플은 아이폰에 대해서 주력 라인업 하나만을 가지고 상위 호환성을 유지하면서 시리즈를 만들어 나가는 전략을 가져갔는데, 이 또한 이용자들에게 잘 먹혀들었습니다. 일관성 있는 후속 모델 출시로 이용자들은 기종 교체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대응할 수 있게 되었고 새 모델이 나와도 구 모델과의 기본적인 호환성은 물론, 소프트웨어적인 지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무상으로 제공되는 OS의 업그레이드는 2009년에 나왔던 아이폰 3Gs에 최근에 나온 iOS 6까지 얹을 정도였으니 정말 엄청나죠. 아이튠즈 스토어를 통해 아이폰5가 나오는 현 시점에서도 구 세대의 아이폰 이용자들을 위한 새 앱들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많은 판매량과 함께 열광적인 팬덤의 형성입니다. 애플은 아이폰 3Gs 출시 이후 아이폰 4와 아이폰 4S 출시를 통해 해외 휴대폰 업체들이 버티기 힘든 대한민국에서도 그동안 약 400만대를 판매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이폰을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온갖 제한으로 점철되던 대한민국 이동통신 시장을 이용자 위주로 바꿔놓은 공로 또한 어느 정도 인정할만합니다.

 이처럼 애플의 아이폰이 보여준 것은 과거의 대한민국에서는 찾기 힘든 '낯선' 즐거움이었죠. 여기에 열광하는 한국의 소비자들의 심정 또한 이해할만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낯설음'에는 즐거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애플표 AS

 아마도 이 새로운 '낯설음' 가운데에서도 당시 가장 큰 원성을 들었던 부분은 애플의 AS일 것입니다. 최고의 스마트폰이라고 해서 구입했는데, AS 품질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죠.

  애플은 대한민국 진출과 함께 아이폰의 AS에 있어서 리퍼비시드(refurbished) 제품으로 교체한다는 꽤나 낯선 정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리퍼라고도 불리는 이 리퍼비시드 제품은 한마디로 수리된 재생품인지라 제품 자체에는 이상이 없지만 국내 회사들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이고 애플 코리아 측의 제대로 된 설명도 거의 없던지라 고객들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특히 사소한 고장에도 부분 수리가 아닌 리퍼비시드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은 비싼 교체 비용을 받는 유상일 경우 뿐만 아니라 무상으로 받는 경우에도 고객들의 불만을 샀죠. 결국 이 정책은 소비자들의 원성에 못 이겨 아이폰4가 나온 후인 2010년 11월부터 부분 수리가 가능하게 바뀌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한차례 AS 비용 인하가 있었습니다만 여전히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국내 제조사들의 AS 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설 수리센터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애플이 자랑하는 외관 또한 문제였습니다. 멋진 디자인을 위해 타사가 쓰지 않는 최신 소재를 적용하다보니 실제 활용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죠. 특히 최근에 나온 아이폰5가 흠이 잘 나는 재질로 만들어진 것은 이미 이 제품을 이용 중인 해외 리뷰어나 이용자들에게 지적받았던 사항입니다. 이렇게 본체에 흠이 잘 나는 문제는 이전의 아이팟 터치 시리즈에서도 한때 말이 많았던 부분이었습니다만 다시 부활한 셈입니다. 외관을 깨끗하게 보존하고자 케이스나 보호필름을 애용하는 한국 이용자들에게는 특히 중요한 문제죠.
 하지만 이에 대해서 애플은 제품에 하자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팬덤을 거느린 애플이니 괜찮은 거지, 국내 제조사였다면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고 있을 겁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아이폰5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의견에 대해 애플 측의 반응은 늘 같았습니다. ‘일방통행’.

일방통행의 애플

  애플은 아이폰을 대한민국에 판매하면서 AS 외의 부분에도 새 기준을 소비자들에게 내밀었습니다. 30핀 단자라는 애플 만의 독자 방식 커넥터와 함께 더 얇은 두께와 안정성을 위한 내장형 배터리는 국내 휴대폰 사용자에게는 처음이었죠.
 DMB가 없는 것이야 글로벌 모델을 큰 변경없이 한국에 가져온 것이니 어쩔 수 없다쳐도 메모리 용량을 가격에 따라 정해두고 확장 슬롯을 통해 메모리를 늘릴 수 없게 만든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불합리한 정책이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지원하는 LTE 또한 글로벌 모델인 아이폰5의 한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현재 나오는 대부분의 신형 국산 LTE 스마트폰들이 지원하는 VoLTE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는 LTE로의 전환이 가장 빠른 한국 환경에 애플이 맞추지 못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게 만일 다른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휴대폰 제조 글로벌 톱5 안의 기업이 두개나 있어 비교할만한 제품이 충분합니다.

출처: 애플 공식 홈페이지


  게다가 아이패드 미니와 아이패드 4세대, 그리고 아이폰5에 모두 채용된 새로운 커넥터인 라이트닝 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라이트닝 규격의 편의성과 새 기능이야 물론 좋겠지만 기존에 많이 보급되어 있는 30핀 단자용 악세사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곤란해졌습니다.
  기본으로 제공해도 좋을 애플의 라이트닝-30핀 변환 어댑터의 가격이 4만원이라는, 결코 저렴하지 않은 점도 문제지만 설렴 이 어댑터를 거치는 경우에도 USB 연결 및 오디오 아웃 기능 밖에는 쓸 수 없습니다. 즉 기존 30핀 어댑터를 쓰도록 만들어진 제품에서는 비디오 아웃이나 외부에서의 기능 제어가 불가능해진 것이죠. 이들 기능을 쓴다면 기존 액세서리는 변환 어댑터가 있건 없건 간에 대부분 제대로 못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일방통행 식의 일 처리가 바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iOS 6에서 잘 쓰던 구글 지도를 내쫓고 갑자기 대신 들어간 애플 지도는 DB가 제대로 준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와 이용자들을 불편에 빠뜨렸지만 별다른 대안없이 여전히 서비스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 애플 지도에 대해서만큼은 오랫동안 애플 제품을 사랑해왔던 절대적인 팬들까지도 불만이 적지 않은 부분입니다.
나중에 iOS용 구글 지도가 나오자마자 48시간 만에 1천만 다운로드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끄는 것을 살펴보면 그동안 애플 지도가 얼마나 불편했는지를 알 수 있음을 증명하는 반면 준비되지 않은 애플 지도의 도입이 이용자 입장에서 과연 충분히 검토된 건지 의구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사실 이 애플 지도의 문제는 아이폰에서 각 용도별 기본 앱을 바꿀 수 없는 것과도 연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사파리보다 더 좋은 웹브라우저가 나와서 이를 쓰고 싶어도 애플은 기본 웹브라우저를 사파리가 아닌 것으로 설정을 고칠 수 없게 해놓았습니다. 구글 지도 앱이 iOS 용으로 나오긴 했어도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특정 위치를 보고자 할 때 실행되는 기본 지도 앱은 언제나 애플 지도입니다. 구글 지도는 따로 실행시켜야 하는 불편이 있죠. 그동안 사파리와 구글 지도의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에 크게 불거지지 않았던 문제가 애플 지도로 교체되면서 떠오른 셈입니다. 기본 웹브라우저나 지도 설정을 바꿀 수 있는 안드로이드와는 대조되는 부분이죠.

출처: 애플 공식 홈페이지


  이제 슬슬 마무리 짓겠습니다. 아이폰이 한국에 와서 함께 산지 이제 만 3년이 되었고 이번에 새로 나온 아이폰5 또한 전작들처럼 많은 이들의 손에 들어갈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죠. 3년간 아이폰과 함께 지낸 한국 사람들이 애플에게 바라는 것은 진정 무엇일까요? 앞에서 살펴봤듯이 이미 아이폰을 필두로 아이패드, 매킨토시, 아이팟 등의 제품을 통해 그들만의 매력을 대한민국에 알린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동통신사와 제조업체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되었겠죠.

 하지만 애플은 대한민국에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아이폰의 한국 출시 당시에 느꼈던 애플과 한국인들과의 거리감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니 말이죠. 물론 그 거리감 자체가 처음에는 한국에 없는 색다른 느낌으로 셀링 포인트가 될 수는 있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지금과 같은 거리감을 가져가는건 좋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애플이 예전처럼 즐거운 자극을 주는 좋은 제품을 내놓기를 바라고, 이를 즐길 때 방해하는 장벽과 거리감은 줄인 내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요즘과 같이 경쟁사와의 격차가 줄어든 상황에서 애플의 매력은 예전과 같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