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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 I을 처음 발표한 이후 다소 기복이 있긴 했지만 애플은 시대를 앞서가는 제품 군을 적지 않게 발표하는 회사였습니다. PC의 대중화 시대를 연 애플 II가 그랬고 전자출판 시대를 연 매킨토시와 최초의 PDA라 할 수 있는 뉴튼 또한 그랬습니다. 이후 애플은 부침을 겪다가 스티브 잡스의 복귀와 함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 시리즈로 다시 한번 세계에 우뚝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열풍은 스마트폰인 아이폰과 태블릿 컴퓨터인 아이패드로 이어졌고 침체되었던 매킨토시 또한 인텔 x86 플랫폼으로 옮겨오면서 아이맥과 맥북으로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자체적인 프로세서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여 A6와 A6X를 만들었고 이들은 최신 제품인 아이폰5의 아이패드 4세대에 탑재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아이폰은 출시 2007년 6월 29일 출시된 후 5년 만에 2억 5천만대라는 경이적인 판매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이패드 또한 지난 10월 기준으로 1억대를 돌파했습니다. 새 모델인 아이폰5와 아이패드 4세대, 아이패드 미니의 가세로 인해 그 기록은 계속 경신 중입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콘텐츠를 담당하는 아이튠즈 또한 음악 2800만곡, 100만개의 팟캐스트, 4만개의 뮤직비디오, 3천개의 TV 쇼, 2만개의 오디오북, 영화 4만 5천편, 70만개의 앱을 가진 거대한 콘텐츠 유통 채널(주로 미국 기준으로 산정)로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애플은 말 그대로 천하무적이고 앞날에는 밝은 햇살만이 비추고 있을 것 같습니다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꼭 그렇게 정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애플의 성장을 주도했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대표하는 모바일 분야에서 특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줄어드는 경쟁사와의 격차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UNIX 기반의 자체 개발 iOS의 훌륭한 UX와 안정성과 빠른 반응 속도, 그리고 풍부한 콘텐츠라는 소프트웨어 적인 장점과 세련되고 깔끔한 디자인에 좋은 성능, 그리고 미려한 레티나 디스플레이 등 하드웨어의 매력을 무기로 오랫동안 경쟁사를 압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은 경쟁사가 성장하면서 조금씩 차이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성장세가 눈에 띄는데, 4.0 ICS 이후 그 완성도가 일정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콘텐츠의 양과 질은 여전히 iOS와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예전처럼 엄청난 차이는 아닙니다. 오히려 안드로이드를 개조해서 쓰고 있는 아마존의 킨들 파이어는 콘텐츠 면에서도 큰 장점을 갖고 있을 정도입니다(미국 등 아마존이 영업하는 지역 한정이지만).

 이 와중에 애플은 갑작스럽게 구글 지도를 자사 iOS에서 내리고 애플 지도로 바꿔 큰 비난을 들은 바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를 성장시켜 온 구글에 대한 보복의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구글 지도를 대체할만한 충분한 DB 구축없이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실제로 피해를 본 것은 구글보다는 오히려 애플 제품들을 즐겨쓰던 이들이었습니다.

 하드웨어 쪽은 더 합니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주요 무기가 애플 제품보다 뛰어난 하드웨어 제원인 경우가 많았던 것을 기억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애플이 480x320이라는 HVGA 수준의 해상도를 제공할 때 안드로이드는 이미 800x480의 WVGA 수준이었고 아이폰4에서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이름으로 960x640의 고해상도를 제공하자 안드로이드 진영은 1280x720~800의 HD 해상도를 들고 나왔습니다. 듀얼코어와 쿼드코어 AP를 최초로 적용한 것 또한 안드로이드 진영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안드로이드의 최적화 수준이 낮아서 고성능 하드웨어로 때운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만, 4.1 젤리빈 까지 온 상태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삼성전자나 HTC 등 안드로이드의 주요 제조사뿐만 아니라 중국의 잘 알려지지 않은 제조사들에게까지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낮은 가격에도 애플과 큰 차이 없는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가진 기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폭넓게 열린 것이죠.

 그리고 또 한가지, 애플의 자랑거리인 세련된 디자인과 재질은 장점이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문제점을 수반하는 경우도 있죠. 모토로라나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통의 휴대폰 업체들과는 다르게 애플의 제품들은 경쟁 업체들이 쓰지 않는 첨단 소재들을 즐겨 이용했습니다. 덕분에 경쟁사가 갖추지 못한 새롭고 세련된 외관을 갖출 수 있었지만 출시 초기에 생기는 완성도 부족에 따른 다양한 문제점들은 내버려둔다 해도 사소한 마찰에도 흠집이 나는 재질을 채용하거나 개봉 안한 새 제품에 흠이 나 있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죠.

 그 결과는 점유율로 나타났습니다. 가트너에 따르면 2012년 3분기 기준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판매량 자체는 모두 늘었지만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은 72.4%로 작년 같은 분기에 비해 19.9% 상승한 반면 iOS의 점유율은 13.9%로 작년 같은 분기에 비해 1.1% 떨어졌습니다. 새 제품인 아이폰5가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하면 좀 나아지겠지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애플이 포위된 형국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패드가 독주하고 있던 태블릿 시장은 그나마 훨씬 낫습니다만 그 흐름은 좋지 않습니다. IDC의 자료에 의하면 2012년 3분기 기준으로 애플은 50.4%로 작년 같은 분기에 비해 9.3% 점유율이 떨어졌습니다. 여전히 과반을 넘고 있습니다만 2위부터 5위까지의 업체들은 모두 점유율이 작년 같은 분기에 비해 3배 이상 뛰어올랐습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숫자는 분명 애플이 절대 강자임을 알려주고 있긴 합니다만 시장 추세를 보고 있자면 꼭 그렇지 만도 않은, 애플 쪽에서 뭔가 해야 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애플이 모를 리 없죠. 이에 대한 애플의 대응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잦아진 관련 업체에 대한 소송 뿐만 아니라 새로 나오는 제품들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도도하지 않은 애플?

 애플이 내놓은 2012년 하반기에 최신 제품은 3종입니다. 아이폰5와 아이패드 미니, 아이패드 4세대입니다.

사진출처: 애플 공식 사이트

 아이폰5는 오랫동안 아이폰 시리즈가 머물러 있던 3.5인치 화면에서 벗어난 최초의 제품입니다. 화면은 4인치로 늘린 대신 폭은 거의 그대로인 640x1136의 해상도로 출시되었습니다. 덕분에 한쪽이 긴 와이드 화면비(16대 9에 가깝습니다)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화면 크기는 늘리지만 폭의 증가를 최소한으로 줄여 손을 쥘 때의 편의성을 생각한 방식은 이미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수없이 답습하던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사진출처: 애플 공식 사이트


 아이패드 미니는 2010년에 했던 7인치 태블릿은 시장에서 안 팔린다(스티브 잡스가 DOA; Dead On Arrival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던 말을 스스로 뒤집고 내놓은 제품입니다. 아시다시피 7인치 안드로이드 태블릿은 갤럭시 탭이 처음 나와 꾸준히 판매되었고 넥서스7과 킨들 파이어가 그 봇물을 터뜨려 이제는 당당히 태블릿 시장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죠.

아이패드 4세대는 기존 3세대 제품에서 최신의 A6X 프로세서를 담아서 나왔습니다. 출시 주기가 3세대와 7개월 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아이패드 3세대를 구입한 이들을 우울하게 만들 정도로 원래의 출시 주기보다 빠르게 출시된 제품이죠.
 이들 세 제품은 공통적으로 라이트닝이라는 새로운 연결 규격을 지원합니다.

 아이폰5나 아이패드 미니의 변화를 보면 애플은 더 이상 경쟁사가 무얼 하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추구한다던 예전의 방식에서는 벗어난 듯 합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일찌감치 쓰고 있는 와이드 화면 비와 7인치(정확히 말하면 7.9인치입니다) 태블릿 시장의 진입은 경쟁사가 먼저 시작했어도 그 장점은 확실히 취하겠다는 의도도 보입니다.
 애플은 아이패드 미니를 통해 저가 태블릿 시장에 대응하고 아이폰5와 아이패드 4세대로 고급 이용자 시장도 가져가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성능은 A6 시리즈 AP가 책임지고 새로운 라이트닝 연결 규격으로 마이크로 USB로 통일되어 가는 타사의 제품들과는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이패드 4세대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경쟁 태블릿들에 대해서도 빠르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러한 대응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합리적인 방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혁신'을 주도해왔던 예전의 애플과는 좀 다른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어떤 회사도 아닌 '애플'인 만큼 더 큰 화면의 스마트폰에 대해서건 7인치 태블릿에 대해서건 경쟁사가 쓰지 않은 획기적인 방법을 기대했지만 애플이 선택한 것은 오히려 '평범'한 방식이었던 것이죠.
 와이드 화면 비를 지원하더라도 애플 제품 만의 장점을 내세우지 못하고 그저 화면에 표시되는 정보량이 늘어난 것만 홍보한 것은 굳이 아이폰5가 아닌 다른 경쟁 제품에서도 볼 수 있는 요소입니다. 오히려 아이폰5의 출현으로 iOS가 지원하는 화면 해상도가 모두 다섯 가지로 늘어나 버려 애플리케이션 지원 면에서는 예전보다 복잡해졌습니다(아이폰5와 아이패드1/2의 해상도는 세로는 아이폰5가, 가로는 아이패드1/2가 더 높습니다).
 아이패드 미니가 기존 아이패드와는 화면 크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UX가 기존 아이패드와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상업성을 고려한 것이라면 모범 답안이지만 실제 이용자 입장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죠. 다른 회사도 아닌 ‘애플’이 말입니다.

 물론 애플도 기업인 만큼 그 정책이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뀌는 부분이 그 동안 애플 제품이 가진 독특한 카리스마 중 하나라면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이를 긍정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애플 만의 매력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할 겁니다.


 마무리 짓겠습니다. 애플이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강고한 위치를 고수할지, 아니면 경쟁사들의 도전에 조금씩 쇠퇴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만, 확실한 건 애플이나 경쟁사나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겠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자체야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변화 속에서 과연 그들이 무엇을 낳을 것이냐가 관건이 되겠죠. 당분간 잘 지켜봐야 할 듯 합니다.